어릴 적부터 나는 이 이야기가 좋았다.
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니고, 해피 엔딩도 아닌,
어찌 보면 섬찟하기까지 한 이 이야기가 왜 좋았을까.
어른이 된 지금 내가 생각해보면,
철저한 권선징악, 인과응보.
그 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인 듯 하다.
이 이야기는,
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.
어디까지가 사실이고,
어디까지가 사실에 더해진 허구인지는
확인되지 않았지만
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그 말 자체에는
설득력이 존재한다.
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
그 필요가 해소된 다음,
도와준 이를 버리는 일은
현대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.
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,
어디에나 그들 같은 이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.
누군가는 내게 말했다.
이 이야기의 희생자가 아이들이 되는 게
불쌍하지도 않느냐고.
그 누군가에게 나는 대답했다.
그 아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고
그 부모 밑에서 자라면,
그 부모와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밖엔
다른 미래가 없지 않겠느냐고.
오히려,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
열어 준 걸 수도 있다고 답했다.
피리부는 사나이가
아이들을 '유괴'한 거라고 이해 한다면,
굉장히 슬프고 아픈 이야기지만
'악'에게서 구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,
희망이 남게 된다.
어떤 어른들이 있는 세상인가에 따라서,
아이들이 달라진다.
아이들은 어른의 등을 보고 자라나기 때문이다.
그렇기에,
어른인 나,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잘 살아야 한다.
물질적인 의미로 '잘 사는 것'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
근본적으로, 바람직한 삶.
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.
오랜만에,
이 이야기가 다시 읽고 싶어져서 책을 꺼내 들었다.
얇은 책이지만,
이 안에 담겨진 이야기는 꽤나 묵직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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